말레이시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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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인도양과 남지나해 중간에 위치하는 말레이지아는 옛날부터 동쪽의 중국과 서쪽의 인도를 잇는 중요한 교통로로서, 이민의 중계지 였습니다.
ㅇ 말레이계 민족은 수천년전에 중국 운남 방면으로부터 왔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또한 말레이 반도를 포함하여 수마트라, 자바섬, 필리핀 군도를 포함한 현재의 동남아시아 지역에 널리 거주하고 있습니다.
ㅇ 서기 원년경에 말레이 반도는 철기시대에 진입하여, 1세기경에는 이미 현재의 케다, 조호르 남부에 주석. 사탕등 특산물을 찾아서 인도나 중국의 무역선이 기항하기 시작하였습니다.

[ 말라카 왕국 ]

ㅇ 7세기 초반, 힌두문화의 영향을 받은 말레이계 민족이 수마트라 섬 동해안에 말라유 왕국을 세웠습니다.
ㅇ 그후, 7세기 후반에 수마트라 섬 남해안의 바렘반에 수도를 둔 스리위자야 왕국이 멀라유 왕국을 병합하여 9세기까지 케다, 클란탄, 트렝가누, 파항지역을 정복하고, 이윽고 동 수마트라와 말레이 반도 전체를 석권하게 되었습니다.
ㅇ 이 스리위자야 왕국은 14세기초 자바섬에 성립된 힌두교국가인 마자파히트 왕국에 의해 멸망하였습니다.

A replica of a Fort A Famosa located in Malacca, the Historical City of Malaysia.

ㅇ 14세기말에는 수마트라 빠렘방의 왕자인 파라메스와라가 마자파히트왕국의 지배로부터 벗어나서, 당시 작은 어촌에 지나지 않았던 말라카에 말레이계 주민과 함께 이주하여 1405년 말라카 왕국을 건립하였습니다.
ㅇ 파라메스와라는 힌두교도였으나, 당시 해상무역을 장악하고 있던 페르샤, 아랍, 인도의 무슬림상인을 끌어들이기 위해 스스로 이슬람교로 개종하고, 당시 세력을 확장하고 있던 샴(태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당시 동남아시아 지배의 야망에 불타고 있던 중국(명)의 보호를 요청하여, 명의 조공국이 되었습니다.
ㅇ 명나라와의 조공관계 유지를 위해 많은 중국여성과 결혼관계를 유지한 결과, 말라카의 중국인(Baba)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많이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ㅇ 말레이 반도에 이슬람교가 들어온 것은 13세기라고 알려지고 있으며, 파라메스와라의 뒤를 이은 「무가트. 이스칸다르샤」는 최초로 이슬람교로 개종한 왕이라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ㅇ 제3대 국왕인 「무라파 샤」부터 술탄의 칭호를 사용하게 되었으며, 그때부터 말라카에 이슬람교가 정착하게 됨과 동시에 국가로서의 체제도 갖추게 되어 말라카는 15세기 중반까지 국제무역을 토대로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었습니다.

> [ 포르투갈의 말라카 점령 ]

ㅇ 동양무역의 패권을 노리던 포르투갈은 인도의 고아를 지배한 후, 1511년 함대를 편성하여 말라카를 공격하여 말라카 왕국을 수중에 넣게 되었습니다.
ㅇ 이에 「마후무으댜」국왕은 조호르강 상류의 「사욘피남」지역으로 옮겨서 조호르 왕국을 건립하였습니다.
ㅇ 포르투갈의 지배는 그후 1641년까지 130년간 계속되었으며, 그 기간 중 1545년 프란시스코 자비에르가 말라카를 방문하여 기독교 보급에 노력하였으며, 말라카에는 지금도 기독교 교회 등 당시의 자취가 남아있습니다.

[ 네델란드의 지배 ]

ㅇ 17세기에 들어서 네델란드의 아시아내 영항력이 대단히 증대하여, 1606년 말라카해협에서 포르투칼 함대를 격파하여 말라카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ㅇ 현재 말라카시 교외에는 당시 포르투칼인의 후예들이 살고 있으며 「포르투갈 마을」로서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ㅇ 네덜란드 지배시에는, 주석이 말레이 반도에서의 주요 특산품이 되어, 중국인들의 이주가 조금씩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내란이 끊이지 않았으며, 조호르 왕국, 인도네시아 셀레베스 섬의 부기스 족, 수마트라의 미난카바우족 등과 대립이 계속되었으며, 조호르 왕국도 점차 분열되기 시작하였습니다.

[ 영국의 지배 ]

ㅇ 영국은 1786년에 당시 케다주 페낭 섬을 지배하여, 말레이 반도 남부지배의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나폴레옹 전쟁결과, 네덜란드의 해외식민지가 영국 보호 하에 들어오게 되어, 말라카도 영국 동인도회사가 점령하였습니다.
ㅇ 영국은 1814년 프랑스와의 전쟁후, 런던협정에 따라 말레이반도 전역내 기지를 네덜란드에 반환하였으나, 1819년 영국 동인도회사의 임원인 스탠포드 래플스경을 말라카 남부에 파견, 조호르주 술탄과 싱가포르 할양을 교섭하여 이를 관철시켰습니다.
ㅇ 1824년 영란조약에 따라, 네덜란드는 영국의 싱가포르 지배를 승인함과 함께, 말라카도 영국에 할양하였습니다.
ㅇ 페낭, 말라카, 싱가포르는 해협식민지로 불리어져, 동인도회사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나, 동인도회사의 해산에 따라 1867년에 영국의 직할식민지가 되었습니다.
ㅇ 이를 발판으로 영국은 말레이반도 내륙에도 정치적 지배를 확대하여, 1887년까지 페락, 슬랑고르, 너그리섬빌란, 파항주를 보호 하에 두고, 1896년에는 이들 지역을 통합하여 말라야 연합주를 성립시켰습니다.
ㅇ 또한 1914년에는 태국으로부터 종주권을 할양 받은 케다, 클란탄, 트렝가누, 페르리스의 4개주와 조호르주를 합한 5개주로서 말라야 비연합주도 성립시켰습니다.
ㅇ 한편, 보르네오섬 북서부에는 예전부터 부루나이 왕국이 있었으나, 1841년 영국인 부르크는 내란의 진압에 협력하여 이의 공적으로서 부루나이 왕국의 지배하에 있던 사라와크를 획득하여 부르크 왕국을 건립하여 ‘백인라쟈’ 가 되었습니다.
ㅇ 사바는 1881년부터 북보르네오 회사가 술탄으로부터 조차를 받아 개발을 행하였으나, 영국은 1888년 사바와 브르크왕국을 보호령으로 하여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시까지 이를 유지하였습니다.

[ 일본군 점령으로부터 독립까지 ]

ㅇ 1941년 태평양전쟁이 시작되어, 일본군은 1942년 1월 싱가포르를 제외한 말라야 전역을 점령, 2월에는 싱가포르도 점령하여 그후 일본군의 패전까지 약 3년반에 걸쳐 일본군의 점령시대가 계속되었습니다.
ㅇ 1945년 일본군 패전후, 재차 영국의 식민지가 되어, 1946년에는 싱가포르를 제외한 전 말레이 반도를 포함하는 말라야 연합이 수립되었습니다. 이러한 영국의 지도에 의한 자치는 각 민족에게 평등한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었으나, 일본군 점령시대에 우대를 받았던 말레이계 주민이 기득권을 상실하는 것에 반대하여 말레이인 보수층을 중심으로 「통일 말레이 국민조직(UMNO」이 결성되었습니다.
ㅇ 1948년 영국은 각주의 술탄의 권한을 강화하고, 비 말레이계 주민의 시민권 취득을 어렵게한 말라야 연방안을 제시하여, 과거 말라야 연합 4개주와 5개 비연합주를 합친 9개주로 구성되는 말라야 연방을 결성하였습니다.
ㅇ 이에 불만을 가진 중국인들이 일시적으로 게릴라전을 전개하였으나, 영국은 중국계 주민에도 정치참가의 기회를 부여하는 방법을 통해 대처해 나갔습니다.
ㅇ 1955년 7월의 제1차 총선거에서, UMNO, 마화공회(MCA), 인도국민회의 (MIC)등 각 민족사회를 포함한 압둘라만이 이끄는 말라야 연맹당이 압승하여 집권을 장악하게 되어, 영국과의 독립교섭이 개시되었습니다.
ㅇ 1957년 말라야의 독립을 규정한 말라야 연방협정이 성립, 동년 8월 31일 페낭, 말라카의 식민지를 추가한 11주로 구성되는 영연방내의 독립국인 말라야 연방이 발족하였습니다.
ㅇ 초대 총리로 취임한 압둘라만은 말라야 연방, 싱가포르, 사바, 사라와크, 부루나이등으로 구성되는 말레이지아 연방의 결성을 추진하여 1963년 월, 부루나이를 제외한 말레이지아 연방이 발족하였습니다.
ㅇ 그러나 말레이 우선 정책을 취하는 말라야와 중국인이 대부분을 차지하여 인종간 평등주의를 취하는 싱가포르간의 대립이 격화되어 1965년 8월 라만총리가 돌연 싱가포르의 분리를 결정한 결과, 싱가포르는 연방으로부터 분리 독립하게 되었습니다.
ㅇ 싱가포르의 분리 독립 후, 더욱 말레이화정책이 추진되어 1967년에는 말레이어가 국어가 되고, 이슬람교가 국교로 결정되었습니다.

[ 근대화의 가속과 Vision 2020 ]

ㅇ 독립후 쌓였던 인종간의 갈등이 1969년 5월에 대규모 인종폭동으로 이어져 초대 압둘라만 총리(재임기간 : 1957-1969)는 책임을 지고 압둘라작 부총리에게 총리직을 넘기고 사임하였습니다. 제2대 총리인 압둘라작(재임기간 : 1969-1976) 및 3대 총리 후세인 혼(재임기간 : 1976-1982)은 인종간의 갈등이 소득의 불균형 부의 편중에서 비롯되었다고 판단하여 상대적으로 가난한 부미푸트라를 부양하기 위해 부미푸트라정책을 입안하는 한편 1971년부터 1990년까지 신 경제정책(New Economic Policy)을 입안 실행했습니다. 또한 5년단위의 개발계획도 병행 추진하여 원래 천연자원 부국이었던 말레이지아는 근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ㅇ 1981년 3대 총리인 후세인 온이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하자 마하티르 부총리가 4대 총리가 되면서 말레이지아의 근대화는 가속되었습니다. 마하티르 총리는 취임하지 동방정책(Look East Policy) 으로 국민들의 기술교육과 근로정신을 호소하는 한편 1986년 투자유치법을 개정하여 적극적인 외국투자를 유치하여 천연자원을 위주로 한 1차산업을 탈피하고 2차산업을 장려하였습니다. 1991년에는 2000년까지의 국가개발계획(National Development Plan)과 Vision 2020(1991년부터 2020년까지)의 장기 발전계획을 수립 추진하고 있습니다. (Vision 2020은 별도의 설명 참조바람)
ㅇ Vision 2020의 가시적인 실행은 Multimedia Super Corridor(MSC)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MSC는 세계 최고의 빌딩이 있는 쿠알라룸푸르로부터 세팡 신공항이 있는 50Km길이와 폭 15Km를 하나의 회랑(Corridor)으로 연결하여 이사이에 신 행정수도인 Putrajaya와 정보도시인 Cyberjaya를 건설한다는 것입니다. 즉 쿠알라룸푸르는 이미 갖추어 놓은 비즈니스센터의 역할을 하고 Putrajaya에서는 문서없는 전자정부를 만들고 Cyberjaya에서는 Multimedia산업을 육성하고 Multimedia대학을 세우고 다국적기업의 동남아 본사가 들어서 R & D쎈터화 하겠다는 것입니다.


ㅇ 1998년에 세계 최고높이 Petronas 쌍둥이빌딩과 세팡공항이 완공되었고 1999년에는 Cyberjaya를 시작했고 신행정수도인 Putrajaya가 완공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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